화양연화를 보셨나요. 왕가위를 미쟝센 영화의 대가로 끌어올려준, 아름다운 연출의 화양연화. 영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더라도 노래 Yumeji' Theme 이 흘러나오면서 영상은 느릿하게 흘러가는 그 장면을 본다면 분명히 익숙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광고나 다른 영화에서 굉장히 많이 오마쥬 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양연화를 보고서야 아 이게 전부 오마쥬였구나, 오리지널이 여기 있구나 했습니다. 

화양연화의 포스터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화양연화의 뜻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합니다. 영어 제목으로는 "In the mood for love"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목과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에 관한 영화입니다. 포스터는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지요. 슬픈 사랑의 이야기 입니다.

실제 영화에서는 이렇게 둘이 행복하게 국수집에서 마주 앉는 장면은 없습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첸씨 부부와 차우씨 부부가 한 건물로 이사오면서 벌어집니다. 첸 부인은 집을 보러 왔다고 한 집의 현관문을 두드립니다. 집을 보고 이사오기로 결정한 후 나오는 그녀와 이제 막 집을 보러 온 차우씨가 마주칩니다 집주인은 차우씨에게 방금 막 첸 부인에게 집이 나갔다며 옆집에서도 세입자를 구할 수 있으니 알아보라고 합니다. 이렇게 첸 부인과 차우씨는 옆 집에 사는 이웃이 됩니다. (이 장면이 왕가위의 영화 세계관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팬들 사이에서 화양연화가 아비정전의 후속편으로 일컬어지는데, 바로 집 주인과 식모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아비를 잊지 못한 소여진이 아비에게 돌아왔고, 첸씨는 소여진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이미 주인이 차지하고 있어 방이 없다는 구성으로, 소여진과 첸씨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일본회사에서 일하는 남편 첸씨는 자주 일본 출장을 다닙니다. 때문에 부인에게는 좋은 핸드백, 남들이 탐내는 일제 밥솥 등을 잘 사다주는 좋은 남편이지만 밥먹듯이 가는 출장때문에 첸 부인을 홀로 남겨두는 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매일 근사하게 차려입고 좋은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공허해 혼자서라도 영화를 한 편 보고 들어옵니다. 저녁은 혼자 해먹기 싫고, 남들이 해 놓은 밥을 먹기에도 체면이 안서 밖에서 국수를 포장해와 집에서 먹습니다. 

 

차우씨는 신문사에서 성실히 일하는 기자입니다. 아내역시 맞벌이로 일하는데 아내가 너무도 바빠 차우씨도 홀로 저녁을 먹습니다. 그 역시 국수 가게에서 밥을 먹고 들어갑니다. 보온통을 들고 국수가게로 걸어가는 첸 부인과 이미 국수를 다 먹고 가게를 나오는 차우씨는 자주 마주칩니다. 이 장면에서 바로 Yumeji' Theme이 흘러 나오고 배우들은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입니다. 

그들과는 다르다지만 왜 둘이 함께 택시안에 있을까요

이 두 사람은 좁은 아파트에서 오며가며 마주칠 일은 많지만 서로 딱히 친해질 일은 없어보입니다. 그러다 어느날 레스토랑에 마주앉은 두 사람. 차우씨가 첸 부인에게 묻습니다. 곧 아내 생일이 다가오는데 아내 생일 선물로 당신의 핸드백이 좋아 보인다면서 어디서 샀는지 묻습니다. 그에 첸 부인은 남편이 외국에서 사온거라 홍콩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차우씨의 넥타이를 선물로 주고 싶은데 어디서 샀는지 묻습니다. 차우씨는 이에 이것 역시 부인에게 외국에 여행갔을 때 선물 받은 것이라 홍콩에 없다고 합니다. 실은 차우씨는 아내에게 첸 부인과 같은 핸드백이 있는 걸 압니다. 첸 부인 역시 남편이 차우 씨와 똑같은 넥타이가 있는 것을 알지요. 바로 이 둘이 자신의 배우자가 서로 만나고 있는 사이임을 알아차립니다. 여기서 첸 부인과 차우씨는 화를내지 않습니다. 우아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둘이 만나게 되었는지 서로 재연해 보기도 하고 배우자가 바람핀 사실을 실토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 지 연습도 합니다. 

항상 아름답게 치파오를 차려입는 첸 부인

일을 그만두고 무협소설을 쓰기로 한 차우씨는 호텔 방 2046호를 빌려 소설을 씁니다. 혼자서는 써지지 않지만 평소 무협소설을 즐겨 읽는 첸 부인의 도움을 받아 쓰게 되면서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싹트지만 첸 부인은 애써 무시하면서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합니다. 첸 부인과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차우 씨는 둘 사이의 이별 연습을 하기로 합니다. 이 때 첸 부인은 무너지면서 서럽게 눈물을 흘립니다. 그녀 역시 차우씨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 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들과는 다르기 위해 애쓰는 것인지 몰라도 슬픈 사랑으로 덮어버리고 맙니다.

본인이 세들어 살던 집을 사 다시 살게 된 첸 부인

시간이 흘러 차우씨도 호텔방을 떠나고, 첸 부인 역시 이사나간지 오래입니다. 그러다 이민가는 집주인을 찾아온 첸 부인. 이전에 살았던, 그와의 기억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 삽니다. 이웃과 잘 지내던 시절도 갔습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또 시간이 흘러 본인이 살던 집을 차우씨가 찾아옵니다 그는 새로운 집 주인으로부터 옆 집에 아들과 혼자사는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첸 부인이라는 것을 차우씨는 알지 못하지요.

 

영화의 끝은 캄보디아 앙코르 왓트에서 막을 내립니다. 옛날에는 비밀이 생기면 나무에 구멍을 파 비밀을 얘기하고 진흙으로 메꿨다는 이야기를 들은 차우씨는 자신의 비밀을 앙코르와트의 구멍에 이야기하고 흙으로 막아버립니다.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이야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이야기.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자 슬픈 순간의 역설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아름답고 따뜻하면서 슬픈 색감입니다.

-추가-

화양연화는 삭제 장면이 상당히 많은 영화라고 합니다. 조금만 인터넷 서치를 해보면 왕가위 감독의 코멘터리가 있는 삭제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삭제 장면이 상당히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몇 장면을 보니 마치 또 다른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영화 본편에서는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자꾸 그들과 다르다고 못 박는 첸 부인 때문에 어쩌면 둘 사이에 아무일도 안 일어났을 것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삭제 장면에서는 둘이 호텔 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나와버려 영화 내용에 못을 박습니다. 차라리 삭제 장면을 보지 말걸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아름답고 모호하게 묘사되는 연출 방식이 더 좋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또 다른 결말을 본다는 생각으로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삭제 장면에서는 차우씨의 새로운 애인도 등장합니다. 싱가포르 여가수와 만나던 차우씨는 콧수염도 기르고 나팔바지도 입는 등 어수룩한 모습에서 멋있는 남자로 변했습니다. 첸 부인을 잊지 못하는 마음에 지금의 애인인 여가수에게 상처도 주는 나쁜 남자가 되지요. 첸 부인 역시 치파오를 더이상 입지 않고 서양식 복식을 입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재회장면도 나옵니다. 비밀을 묻는 장면에 등장했던 앙코르와트에서 재회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첸 부인은 남편을 따라 아들과 캄보디아에 왔습니다. 바람을 피웠던 남편의 과거를 묻고 다시 내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화양연화의 여운이 컸다면 삭제장면을 굳이 찾아보는 것을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그대로 묻는게 좋을 때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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