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집을 순례하다>를 읽고 짧은 독후감을 작성 했었다. 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지은 집을 한 일본인 저자가 둘러보고 귀여운 도면 스케치와 함께 그 집의 배경과 느낌을 서술한 책이었다. 책을 읽을 당시 학교 강의의 일환으로 읽었던지라 억지로 읽긴 했지만 의외로 큰 여운이 남아 독후감을 남겨보고자 한다.

 

집에 관한 책이지만 집이 가진 그 자체의 원초적 의미보다는 건축학도로써 느낀 책 속에 등장하는 집과 건축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건축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저명한 거장 건축가가 지었다는 이 낯설음마저 느껴지는 조합에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축가가 집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경건하고 겸손하게 느껴졌다. 작은 스케일과 장식의 배제에서는 소박함 마저 느껴졌다. 물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소박함 보다는 드라마틱한 화려함이 더욱 강조되었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라는 인물이 가진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포함한 모든 건축가가 거주민을 생각한 디테일한 장소성을 고려한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기에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건축가라는 나의 꿈은 내 집을 짓고 싶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건축학도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집은 건축의 시초에 있는 것이기에 육체만 보호하면 되는 단순한 공간일 것이라는, 프라이버시만 확보되면 될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해 왔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집은 습작이 아닌 걸작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순례라는 약간은 과하다고 느껴질법한 단어를 사용하며 집이 성지임을 암시하고, (단순히 집이기에 순례를 했다기 보다는 저명한 거장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기에 순례를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이지만) 비록 작가 본인은 부모님의 집을 처녀작으로 설계하였지만 결국은 스스로 부끄러워한 작품이었음을, 앞으로도 순례가 더 필요함을 고백한다. 

책에 등장하는 건축가들은 당시 화려한 명성을 누리던 사람이었으나 그들이 건축한 집은 굉장히 소박하고 간결했다. 하지만 그 소박함과 간결함이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촌스러움과 거추장스러움을 제거하고 컴팩트함이 있는, 건축가의 내공까지 함축된 마스터피스인 것이다. 그들의 내공은 건물 그 자체의 매스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동선을 포함한 거주자의 삶을 생각한 디테일에서 뿜어져 나온다. 단순히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그 장소에서의 기억까지 고려해 만들어낸다. 이것은 그 거장 건축가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 건축가라면 당연 집을 지을 때 사소한 것 까지 고려해야 하는 절대 쉬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콕 집어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생각은, 집은 건축의 시작이자 그 끝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은 친근한 대상이지만 그 친근함 때문에 더욱더 우리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기에 섬세함과 고도의 완성도를 필요로 한다. 그 무엇보다 숙련된 건축가가 필요한 이유이다.

처음 낯설음으로 시작했던 건축가의 화려함과 그들이 지은 집의 소박함의 조화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행위로 느껴진다. 셸터라는 핸드빌트에 관한 책을 쓴 로이드 칸은 인간은 자기 집을 자기가 짓고 싶어하는 건축본능이 있다고 했다. 건축가는 그 본능을 단순히 식욕과 동등한 욕구로 볼 것이 아닌 더욱 고차원적인 예술로 승화시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인간 본능에 대한 존중을 뛰어넘어 인간이자 건축가의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고차원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  건축학도로써, 건축가로써 지녀야할 집에 대한 태도는 순례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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